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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모음/노래의 날개 위에

대구시향 제428회 정기연주회에 다녀와서

티켓 인증, 팜플렛 사진, 프로그램 같은건 쿨하게 생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블로그가 무슨 인스타도 아니고 꼬박꼬박 그딴거 인증해봤자 네이버 블로그에 라인 스티커 쓰는 것보다도 못합니다. 사실 이번에 드보르작 8번과 리스트 교향시 전주곡을 들으면서 상임 양반의 취향을 파악한 것 같아서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 코바체프와 금관의 부적절한 관계.

이 대구시향 상임양반 코바체프 선생님께서는 유난히 금관을 세게 때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올 한해 열심히 쫒아다녀본 결과 러닝 타임이 긴 작품에 금관이 나오면 무조건 세게, 청중이 예상하는 세기보다 한 스텝 올려서 빵빵하게 때립니다. 특히 낭만주의 이후 곡들은 더더욱 금관과 타악기를 세게 때리는, 전체적으로 그런 기운이 있습니다. 처음엔 그냥 금관 모에라서 세게 때리나 싶었지만, 428회 프로그램에 고전주의 작품으로 금관이 들어가는 피가로 서곡이 있어서 유심히 들어보았습니다. 피가로 서곡은 뒤의 두 작품(드보르작, 리스트)에 비해서 관악기 편성이 단촐한 편이고 태생이 오페라 서곡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적당히 부드러운 금관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미션이 끝나고 나니까 예의 그 무지막지한 금관의 쓰나미가 몰아쳐 오는데, 집중력이 흐려져서 잠깐 좌우와 합창단석으로 눈을 돌리니까... 아이고... 이 금관을 듣고도 주무시는 분들이...

그렇습니다. 그 무지막지한 금관과 타악의 쓰나미는 상임양반의 취향과는 별개로 그 불편한 의자에서 곤히 잠들어버린 어린 영혼을 구제하기 위한 안티테제로서의 사운드 테러였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금관 세게 치는게 다른 악기의 소리를 묻어버려서 영 찜찜했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앞으로는 대구시향의 그 무지막지한 금관에 숨어있는 깊은 뜻을 헤아리면서 들어야겠습니다.

금관 이야기 하다가 여담처럼 되어버렸습니다만, 모차르트 플루트와 하프 협주곡 KV 299는 정말 사람을 홀리게 하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음색에 푹 빠졌더랬습니다. 마가린 듬뿍 칠한듯 부드러운 현악에 플루트, 하프까지 얹으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더군요. 플루트 이월숙, 하프 곽정씨 정말 감사합니다. 곡이 안 끝났는데 다들 박수를 열심히 치는 걸 보니 다른 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리라 봅니다. 그리고 리스트 교향시 3번도 좋았습니다. 제가 예습하고 들어간 레코딩이 구닥다리 비첨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드보르작 8번은 좀 재고해봐야 할 것이, 템포나 금관이나 다이나믹한 것은 이해를 합니다만 이 다이나믹이 좀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너무 늘어지고 너무 조급하게 몰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좀 거시기 했습니다. 예습을 쿠벨릭으로 한 것이 잘못이라면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이번 정기연주회가 저에게 올해의 마지막 대구시향이 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올 한해 온갖 스트레스로 얼굴에 코티솔 칠갑을 두르고 살면서도 대구시향이 있어서 그나마 즐겁게 보낸 것 같습니다. 대구시향 관계자는 아무도 안 보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