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향 유럽투어 프리뷰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진영민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창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4번 f단조. 실제 유럽투어때에는 프라하 공연만 어제의 레퍼토리와 동일하게 하고, 베를린과 빈에서는 멘델스존 바협 대신 차콥 피협을 연주합니다. 지휘는 우리의 상임양반 줄리안 코바체프, 바이올린 솔로이스트로는 김봄소리씨가 나왔습니다. 예매를 겨우 열흘 전에 해서 좋은 자리는 못 잡고, 1층 구석에 찌그러져서 보고 왔습니다.
티켓을 예매하면서부터 세계 초연작인 "창발"이 걸리적거렸는데, 공력이 짧아서 현대 음악에는 영 손이 안 가는 것도 있거니와 가장 큰 문제는 세계 초연이라는 점. 도대체 이건 어디서 예습을 할 수도 없고 작곡가의 해설을 보아도 도저히 예상이 되지 않아서 아예 마음을 비우고 들어갔습니다. 시작과 함께 약간 노이지한 현악과 금관이 서로 비비고 들어오는데, 잠시 귀를 기울이고 듣다보니 백그라운드 노이즈에서 멜로디가 들리면서 어떠한 음악적 이미지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앞 부분에 두 개의 이미지가 스치듯이 지나가고, 잠시 노이지한 가운데 언뜻언뜻 또 다른 이미지가 스친 다음,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미지가 모핑morphing하면서 곡이 끝납니다. 작곡가 본인의 해설대로, 서양적인 악기의 연주이지만 그 멜로디들이 주는 이미지는 지극히 동양적인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멜로디들이 주는 이미지가 특별히 우리의 산수화, 특히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이상적인 산수화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별히 어제 공연에는 작곡가 본인이 직접 관람했고, 적당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곡이 어려워서 그런지.
멘델스존 바협은 예습이 필요없을 정도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작품이라 편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너번 상임 지휘도 듣고 객원 지휘도 들어보니, 코바체프 재임기의 대구시향이라면 이 양반이 카라얀 장학생이라 그런지 오페라를 많이 해서 그런지 은은한 벨벳 느낌의 점잖고 윤기있는 사운드가 특징인 것 같습니다. 멘델스존 바협에서의 현악도 대충 그런 느낌이었는데, 바이올린 솔로이스트의 폭★발하는 카덴차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로 이어졌습니다. 앵콜도 두 곡이나 나와서 좋았지요. 차이코프스키 4번은 po현악wer po금관wer랄까, 폭발하는 에너지 사이에 유머러스한 연주가 아주 좋았습니다. 이 곡은 예습곡으로 번스타인/뉴욕필의 70년대 실황 영상을 보고 갔는데, 대구시향에서는 처음 들어보는듯한 힘찬 에너지 덕분에 오래간만에 지극히 짧은 한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어제 차콥은 정말 실황 내도 될듯.
하여튼 2016년의 대구시향은 여러 모로 실력있는 악단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상주 공연장도 좋고. 근데 유럽 투어에 독일 서부 지역이 없는게 좀 아쉽습니다. 사실 한국 악단의 유럽 투어는 그 지역에 사는 한인들에게 어필하는 면이 없잖아 있는데, 독일 서부 지역에 한국인들이 많아서 관객 동원력이 좋습니다(...) 예전 정명훈/서울시향 유럽 투어때 우연히 저도 유럽에 머물고 있어서 뒤셀도르프 공연에 낼름 가본 적이 있습니다만, 객석의 절반은 한국 사람이 채워줬더군요. 그 다음달에 바렌보임/슈타츠카펠레 온건 비밀
오는 길에 버스를 탔는데, 앉아있는 학생 하나가 악보를 열심히 보고 있더군요. 팔분음표가 주루룩 늘어서 있는게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는데 체르니 100번이었습니다(...) 이제 한국도 체르니 그만 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마지막으로 공연 외적인 부분입니다만, 대구시민회관 공연은 "일부" 관객들의 관람 태도가 불량해서 마음에 안 듭니다. 특히 마누라 등쌀에 못이겨 따라나온듯한 대구 아재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취침이나 핸드폰 사용은 일쑤이고, 조금이라도 연주가 늘어질 타이밍이면 잽싸게 잡아내서 수군수군 떠들지 않나, 자다가 깜짝 놀라 깨면서 프로그램 책자는 왜 이리 자주 떨구는지, 그럴 거면 여기 오지 말고 만원 들고 북성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꼬까옷 입고 나온 어린 친구들은 관람 태도가 참 좋은데 나이 자실만큼 자신 분들이 왜 이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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