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몇 차례 있었던 츠베덴의 서울시향 연주회를 다녀와서 거의 대부분의 감상은 "퇴근 에디션" 아니면 "무식하게 힘만 쓰는"으로 시작하는 다소 부정적인 표현들로 시작했더랬습니다. 그래서 올해 시향 시즌권을 R석 대신 S석으로 끊은것도 있구요. 그런데 올해 시즌 첫 연주회부터 이런 걱정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호연이 나타났으니 바로 2월 정기공연으로 차려놓은 모교40번과 발퀴레 1막이 그것이었습니다.
먼저 모교40. 이건 제가 칼 뵘의 빈필 연주로 정말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곡이라 특별히 예습은 아르농쿠르의 "그 악단" (=로열 콘서트헤보우) 녹음으로 했습니다. 모교40은 템포가 좀 늘어진다 싶으면 지루하기 쉬운 곡이라고 생각하는데, 츠베덴은 1악장부터 마치 금방이라도 뺨에 김치로 싸대기를 날릴 것만 같은 긴장감을 쿡 찔러 넣으면서 곡의 드라마를 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작년의 밀어붙이는 느낌의 곡이 아니고, 힘차게 전진하는 느낌이 깊게 들었구요. 마치 작년의 그 모든 곡들은 단지 악단과 지휘자의 2인 3각이 덜 무르익어서 "그렇게 보였던" 것이었나, 이번엔 지휘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반응이 연주를 통해서 전해졌습니다. 다만 신속하게 나아가는 현악 파트에서는 조금씩 디테일이 선명하지 못한 느낌을 받기도 했구요. 전반적으로는 이거 그냥 실황 따서 바로 취입하면 살 것 같은 그런 연주였습니다.
1부에서 듣는 사람 정신이 바짝 드는 모차르트를 보여주고 나니 2부가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이건 일부러 캬라얀의 베필 연주로 예습을 했는데요. 인터미션 끝나자 마자 메신저로 엄청난 드라마다, 호연이다 아주 호들갑을 다 떨어놨는데 그건 2부를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잠깐 옆길로 새서, 2023년 대구오페라하우스 시즌 작품이었던 《세비야의 이발사》 그리고 《 피가로의 결혼 》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첫날 세비야는 연주를 잘 하긴 잘 하는데 뭔가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지 않고 책을 읽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상하다, 이거 악단이 뭘 잘못 먹은 것 같다, 왜 반주가 이렇게 궁서체냐... 하면서 막이 내리고 프로젝터에 크레딧이 뜨는데. 아이고! 악단이 대구시향이라구요? 근데 둘째날은 이상하게 반주에서 흥이 나길래 마지막에 크레딧을 보니 디오오케스트라네요 (오페라하우스 전속악단) . 그렇게 오페라도 역시 하던놈이 잘한다는 교훈을 얻고 왔더랬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서울시향의 발퀴레는 어땠냐구요? 1부는 정말로 추진력을 얻기 위한 곡이었고, 작년부터의 모든 빌드업은 설마 이 발퀴레에서 입이 쩍 벌어지는 놀라움을 주기 위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연주였습니다. 휘몰아치는 감정선을 명료하게 엮어내는 재주에 이 악단이 정말 22~23 시즌에 세상 깊은 시벨리우스를 들려준 그 악단인가 싶더라구요. 나오면서 빨리 지휘자 여권 압수하고 링사이클 해야되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츠베덴이 그랬죠, 카멜레온 같은 악단을 만들어 놓겠다고. 그 약속만큼은 확실하게 지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호연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2024년 2월 2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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