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청사포 벼랑으로 바다를 끼고 돌아나가는 풍경으로 유명했던 동해남부선 송정-해운대 구간이 오늘로 영업을 종료하고 장산 중턱의 신선으로 이설합니다. 해운대역은 항상 밤기차로 다녀서 바다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는데, 지난주말 낮에 다녀왔습니다. 선로 구간은 달맞이고개와 연계해서 공원화 계획이 잡힌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운대역 입지가 참 좋은데 부산시가 매입해서 관광안내센터로 활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방문한 날은 전반적으로 오덕력이 낮아서 경춘선 이설이나 스위치백 폐선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는데, 열차 안에 입석이 꽉 들어찬데다가 미리 정보를 알지 못한 사람들이 바다와 반대쪽에 앉아버려서 하이라이트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빠는 경우가 좀 보였습니다. 물론 바다는 이천이백원어치의 값을 했습니다만. 워낙 차내가 혼잡하기도 했고 이쪽 주행 영상이야 다른 분들이 많이 촬영하셨을테니 아예 카메라를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해운대역에서 보니까 내친 김에 가족 단위로 기장, 월내, 경주에 놀러 가는 분들도 많았지만, 저는 송정에서 내렸습니다. 송정역은 예전에 개찰구로 쓰던 건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해수욕장에서 좀 멀고 그렇다고 대로변에 있는 것도 아니라서 폐선 이후에 어떻게 관광자원으로 활용할지 사실 좀 걱정됩니다. 미포건널목에서 송정역까지 폐선로를 따라서 생으로 걷기엔 심하게 먼 거리라 연계는 힘들 것 같고. 아예 죽여버리기엔 아까운 곳이라 활용 방안에 대해서 지자체가 좀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어차피 단순 공원화로 결론나겠지만.
송정은 예전에 여름 MT로 온 적이 있었는데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선것만 빼면 예전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해동용궁사까지 다녀오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차 한잔 사들고 설렁설렁 걸으면서 끝까지 갔다가 돌아나와서 미포건널목으로 갔습니다. 미포건널목은 "바다가 보이는 건널목" 따위의 이름으로 사진이 많이 찍히는 곳인데 이번 이설로 사라지는 건널목 중 하나입니다. 시각표상으로는 열차가 지나가 있을 시간인데 사람들이 건널목 구석에 모여 있길래 잽싸게 가 봤더니 무궁화호가 연착이라 헤드샷을 하나 건질 수 있었습니다(…) 동행한 분은 DSLR이라 세팅이 안 되어서 열차 사진은 못 찍고, 저는 잽싸게 아이폰 꺼내서 찍었습니다. 나이 많은 분들이 비싼 사진기를 들고 미리 진을 치고 계시길래 그 사이에 살짝 껴서 찍었더니 구도는 좋네요. 몸을 좀 낮추고 찍을걸 그랬습니다.
이번 답사를 다녀오면서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폐선구간에 대한 일반인(즉 非덕후)들의 관심은 높아지는데 지방자치단체나 코레일의 대응에는 큰 발전이 없다는 점입니다. 기껏해야 역사 앞 광장에 이설을 알리는 플랭카드 정도이고, 현장에서는 연계 관광 정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뭐 저야 미포항 다녀오고 시립미술관 특별전 보고 쇼핑까지 했으니 나름 잘 주워먹은 셈이지만. 부산시, 부산관광공사, 코레일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여러 가지 연계관광 옵션까지 준비했다면 서로 좀 더 많이 남겨먹는 장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구간은 동해남부선 광역전철 운행에 연계한 표준궤 노면전차 운행도 괜찮아 보입니다. 구간은 좀 넉넉하게 벡스코에서 기장까지 가는 것으로 잡고 최대한 기존 시설을 유용하면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선 주민들은 공원화를 원하겠지만. 아무쪼록 구 동해남부선 구간은 달맞이고개와는 또 다른 장쾌한 풍경을 가진 곳이니만큼 좋은 관광자원으로 재탄생했으면 합니다.
'잡문모음 > 철도청(鐵道聽)' 카테고리의 다른 글
SRT의 운임에 대해 (0) | 2016.09.26 |
---|